GeekNight 2024를 다녀온 후

모든 발표가 끝나고 네트워킹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화장실에서 일을 보며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내 기준으로는 놀랍게도) 네트워킹을 회피하는 사람이 70명중에 나 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E적인 개발자들이 많다니.

건물 밖은 내가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쌀쌀했다.

 

천천히 걸으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그렇께 쪼다 같았을까.

왜 그 자리가 그렇게까지 불편했을까.

 

언제나처럼 처음에는 최근에 부족해진 독서량을 탓했다. 책을 읽지 않아서 그래. 인풋이 없으니 아웃풋이 없는거야.

다음에는 길어진 혼자있는 시간을 탓했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 귀로 듣는 그런 삶이니까 그런거야.

 

나는 달변이(었)다.

가진것보다 오히려 내뱉는 말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어디서든 좌중을 휩쓸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짧은 자기소개마저도 너무나 힘이 들었다.

 

나는 기획자인가, 나는 개발자인가, 나는 사업가인가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이 없다.

백억 가까운 매출의 글로벌 사업도 했고 여러개의 성공한 게임 개발과 다양하게 실패한 서비스 개발과 7년넘게 집에서 서버를 운용하고 있고 10년전부터 자동으로 주식매매를 했으며 생산성 앱도 만들고 블록체인 앱도 만들고 AI앱도 만들었다.

 

각각의 상황에서 어쩔때는 기획자였고 어쩔때는 개발자였고 어쩔때는 사업가였다.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저 3가지 모두였다. 

 

그런데 나는 나를 설명할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나를, 이것저것하다 10년간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마치 50살이 넘은 처녀처럼 조심스러웠다.

 

마지막 질문이었던- 하지만 요청이었던,

"미국에서는 항상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데, 여기도 그런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냐"는 그 말에 얼마나 뜨악했는지 모른다.

 

주제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이 아닌 자기소개를 중심으로한 네트워킹에 나는, 내 지난 10년의 방황만큼 당황했다.

나는 나를 자랑하지 못하는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비하가 좋은 방향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사무실에서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매일 뽀뽀를 한다고 말할수 없다.

나는 사실 집이없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하루종일 개발하고 내가 매일 헬스장에 가는 이유가 샤워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힐수도 없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것도 학습해내고 결국 만들어 왔으며 4시간을 달리고 몸무게의 2배를 들어올리며 다리를 160도까지 찢고 아무거나 먹으면서도 체지방률 16프로를 유지할수 있다고 말할수 없다.

하루 평균 5번 딸을치고 10번도 가능하며 현자 타임이 15초도 안된다는건 더욱 말할수 없다. 

실패가 오래되면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부모님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이야기해 줄수 없다.

 

자기 소개후 나는, 나의 소개가 현실화 된듯, 그러니까 나의 방황과 실패가 추상적인 클래스가 아니라 이제 세상에 나와 실제로 객체화 된듯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열등감이리라.

 

AI나 언어, 프론트, 백엔드, 게임, 생산성, 조직, 주식, 서비스, 디자인, 기획, 사업 어떤 것이든 대화할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작이 되는 나란 존재, 나는, 까만색이었다.

 

나는 어떤 단어에 나를 넣기에 그 단어에 포함되는 양이 너무 적었다.

나는 내가 사람이라는 것에도 의심이 간다. 

나는 전형적인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번 개발자 모임에서 느낀건 내가 30% 정도는 개발자적인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논리를 쌓는 방식은 확실히 개발자에 가까워 보였다..지만 30%로는 어떤 정체성도 규정할수 없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었다. 나는 뽑히면 아니되었다.

 

나의 선발로 인해 이번 GeekNight에 떨어지신 분께 죄송하다.

이 사과를 남기기 위해 후기를 적는다.